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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책 & 독후감

이국땅에서, 낯선 이방인이 되어 ‘차별'에 대해 생각하다

by 쟝파스타 2022. 4. 15.

인도네시아 연수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했던 '독후감' 파일들을 우연히 다시 찾았다.
하여 해당 독후감들을 내 블로그에 업로드해본다.

읽은 책 : ‘앵무새 죽이기’ _ 하퍼 리

(2002, 문예출판사)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31001990 

 

앵무새 죽이기 - 교보문고

■ 선정 내용- 퓰리처상 수상작(1961년)- 하버드대 필독서- 미국대학위원회 SAT 필독서- 미국 중고교생 교과과목 필독서-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G

www.kyobobook.co.kr

 

   반둥에 도착하여 생활한지도 벌써 2주가 되어간다. 물갈이 때문에 약간의 고생을 한 것을 빼고는 현재까진 예상했던 것보다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어 다행이다. 곧 적응이 끝나면 약간의 들뜬 마음은 가라앉히고,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를 무대로 나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일환으로, 이전 용인에서 2주마다 진행했던 독후감을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고, 인도네시아 반둥에서의 첫 번째 독후감을 위한 작품으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골랐다.

 

   나에겐 2살 많은 형이 있다. 형은 울보 겁쟁이였던 나와는 달리 어린 시절부터 보스 기질이 있었고, 굉장히 활발했으며 똑똑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 나이대 아이들보다 조숙했다. 이런 형의 영향으로 나 역시 내 또래 아이들이 ‘HOT’나 ‘젝스키스'와 같은 이른바 ‘1세대 아이돌' 대중음악을 듣고 있을 때 ‘너바나'나 ‘앨리스 인 체인스', ‘펄 잼'과 같은 시애틀 얼터널티브 그런지 음악을 즐겨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의 음악에 꽂히면 그 음악과 비슷한 성향의 음악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고.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이 된 형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나에게 소개해줬다. 4박자의 강한 비트에 계속 반복되는 베이스 소리, 그리고 그 비트에 리듬감 있게 빠르게 이야기하는 형태의 음악.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들었던 ‘하여가'나 ‘Come Back Home’과 다소 비슷하지만, 뭔가 더 세련된 듯한 느낌. 나는 이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그 음악이 미국 흑인들이 주축이 되어 집대성한 ‘힙합'이라는 장르임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힙합을 즐겨들었다. 뜻은 알 수 없지만, 뭔가 호소하는듯한 느낌의 진정성 있는 랩 가수들의 목소리가 나를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내가 즐겨들은 ‘힙합' 음악은 미국 흑인들이 자신들의 ‘인권'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정'을 위해 백인 주류사회에 항의하기 위하여 작성된 장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락(Rock) 음악보다는 투박하고 전투적이고, 다소 분노에 가득 차 있는 듯한 목소리의 노래가 많았다. 그리고 미국 흑인들이 겪은 핍박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앵무새 죽이기'를 대학교 2학년 때 읽고 난 이후다.

 

   ‘앵무새 죽이기'는 남북 전쟁 이후 미국 흑인 노예 해방이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인종 차별이 만연한 대공황 시절의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스카웃이라는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변호사인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가 누명을 쓴 흑인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법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정당한 사법 재판 없이 처벌받기 일수였으며, 따라서 백인인 스카우트의 아버지가 흑인을 변호한다는 사실에 지역 사회의 백인들은 노골적으로 그에게 분노를 드러낸다. 애티커스 핀치는 뛰어난 능력으로 피고인인 톰 로빈슨에게 혐의가 없음을 입증하지만,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그런 핀치의 입증을 애써 외면한 체 톰에게 유죄를 선포한다. 망연자실한 톰은 감옥에서 탈출하려다 총에 맞아 사망하고, 재판에서 이겼지만, 수모를 당한 원고 밥 이웰은 핀치와 스카우트, 그리고 그의 오빠 젬에게 복수를 시도한다. 그는 스카우트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지만, 주인공 스카우트는 핀치의 이웃인 은둔자 ‘부 레들리'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이 된 공황기 이후 약 80년이 지났지만, 현대 미국 사회는 여전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지 않았고,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유입의 증가로 인해 ‘한민족'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믿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외국인에 대한 ‘차별' 문제는 앞으로 더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온 ‘이방인'인 나는 ‘차별’과 ‘다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인도네시아에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직 연수 프로그램 수행을 위해 먼 이국땅에서 온 나를, 이 반둥이라는 도시는 나를 따뜻하게 대해줬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잘 웃는 사람들, 그리고 따뜻하고 시원한 날씨까지… 하지만 원주민이라 할 수 없는 ‘화교' 출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전체 다수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무시하고, 이로 인해 절대 다수인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화교를 물리적으로 배척한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인구가 2억 5천만이 넘고, 6개의 공인된 종교가 있으며, 수백개의 종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이 나라 또한 나름대로의 슬픔이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앞으로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직업을 갖고,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때로는 웃고, 화내고, 눈물을 흘리고, 삶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방인인 내가, 오직 좀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그들보다 회사에 좀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그들을 무시해선 절대 안 되겠다는 나의 다짐을,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했다.

   일요일인 내일이 지나면, 또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찾아온다. 최대한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지양하고, 현지인들의 관습과 사고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Universitas Pendidikan Indonesia

 

- 2018년 1월 19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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