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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창작

신의 주사위 (4)

by 쟝파스타 2019. 10. 6.

출처 : gettyimages(https://mbdrive.gettyimageskorea.com/index.php/creative/?q=%25EB%25A7%2588%25ED%258F%25AC%25EB%258C%2580%25EA%25B5%2590&cc=100772&rechk=)

 

   “그래, 그러면 정해진 건가?”

 

   “네…”

 

   영일과 새롬은 동시에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자네는 나와 함께 가지. 그리고 자네는, 안타깝지만 다음번에 TO가 충분할 때 다시 만나기로 하세.”

 

   그 이야기와 함께 노인과 새롬은 안개 속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 어떻게 된 겁니까…?”

 

   “눈을 다시 떠보니 이곳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이었어요. 약 3개월 동안 혼수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살아나신거군요...”

 

   “뭐… 그렇게 된 거죠. 새롬이라는 여자애가 주사위 게임에서 이겼으니.”

 

   성필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이걸 과연 믿어야 할까요…? 물론 영일 씨가 2년 만에 만난 저에게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저로서는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군요.”

 

   “말씀드렸잖아요, 이 이야기를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성필 씨의 자유에요. 그리고 굳이 믿어주길 원하지도 않고요.”

 

   “후… 혼란스럽군요…”

 

   “나중에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투신하기 30분 전에, 이미 마포대교 상단에서 한 여고생이 투신했다고 해요. 그 여고생은 즉사했고, 그 시신을 수습하던 119 보트가 그 이후 투신한 저를 빨리 발견했기 때문에 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해요. 물론, 그 덕에 제 왼쪽 다리는 신경이 완전히 망가졌고, 결국 평생, 이 목발 신세를 져야 하지만 말이죠.”

 

   영일은 손으로 가볍게 본인의 철제 목발을 두드리며 말했다. 팅, 팅.

   성필 역시 그런 영일에게 딱히 해줄 이야기가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거에요. 아마 저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이 세상엔 정말 많겠죠. 전쟁통에서든 천재지변에서든, 아니면 사고에서든 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들은 ‘기적이다', ‘신의 축복이다'라는 식으로 그들의 귀환을 미화시키곤 하죠. 하긴…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보다는 ‘삶'을 원하니까 이런 반응이 당연할지도 모르고요.”

 

   “그렇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도 있고, 역사적으로도 진시황을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이 ‘영생'을 꿈꿨죠.”

 

   “맞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간절히 원한 사람에게 실패로 인해 다시 주어진 ‘삶'을 과연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일의 질문에 성필은 쉽게 답변할 수 없었다.

 

   “하여튼 저는 사람들이 소위 ‘기적'이라고 말하는 귀환으로 큰 대가를 치렀어요. 다행히, 지옥 같았던 전 직장을 그만둘 수는 있었지만, 덕분에 저는 평생 왼쪽 다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죠. 꾸준히 재활 운동도 해야 하고요.”

 

   성필은 자신도 모르게 검은 슬랙스 안에 숨겨져 있는 영일의 왼쪽 다리를 바라봤다.

 

   “뭐… 성필 씨도 지금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 건 이해해요. 하지만, 항상 TO를 생각하시며 살아가셨으면 해요. 어쨌든, 저 역시 그 회색 양복의 노인을 만난다면 두 번 다시 주사위 놀음을 하고 싶진 않거든요.”

 

   성필은 갑자기 목이 말랐다. 이미 식을 대로 식어버린, 쓰디쓴 맛의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서울의 기온이 34도를 기록했던 그해 여름날, 성필과 영일이 성모병원 커피숍에서 나눴던 짧은 대화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헤어지면서 성필은 영일의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 영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신 영일은 성필의 어머니가 빨리 쾌차하시길 바란다고 성필에게 짧게 이야기하고는 목발을 짚고 커피숍을 떠났다.

 

 

 

   다시 성필이 어머니의 병실로 돌아왔을 때, 그의 어머니는 깨어있었다.

 

   “어디 다녀온 모양이구나…”

 

   “네… 좀 더워서요…”

 

   “그래… 성필아, 혹시 내일 올 때, 엄마 레지오 수첩이랑 묵주 좀 가져다줄 수 있겠니…?”

 

   “의사 선생님이 기도도 신경 쓰는 일이라고 되도록 피하고 안정을 취하라고 하셨는데…”

 

   “그냥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까 답답해서 그래… 그리고 미사도 못 가는데 기도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네… 알겠어요, 내일 가져다드릴게요.”

 

   “그래, 이제 집에 돌아가 봐야지. 저녁이랑 꼭 챙겨 먹고… 너무 걱정하지 마렴. 다 잘 될 거야.”

 

   “네… 걱정 마세요.”

 

   성필은 그의 어머니가 저녁 식사 후 약을 먹는 것을 확인하고는 병원을 나왔다. 다행히 밤이 되자 미칠듯한 한낮의 더위는 한풀 꺾여있었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시원했다.

 

   병원을 나온 성필은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 들고, 마포대교로 향했다. 마포대교 한가운데에서 그는 영일을 생각하며 잠시 난간에 기대며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를 비운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마포대교를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연합뉴스 

 

   25일 오전 마포대교서 여고생 투신자살

 

   김현식 기자 

 

   기사 입력 시간 : 20X5.9.25.17:25

 

   경찰 정확한 사고 경위 파악 중 … 서울시 한강 자살 방지 시스템 실효성 지적



   추석을 앞둔 25일 오전 9시 30분경 서울시 마포대교에서 여고생 이 모양(17세)이 투신, 사망했다.

 

   마포 소방서는 이 모양의 시신을 수습함과 동시에 경찰은 이 모양의 사고 경위를 파악 중이다.

 

   이 모양의 사망으로 마포대교에서 올해 투신으로 사망한 사망자 수는 65명이 되었다.

 

   마포대교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에 있는 모든 한강 다리 중 가장 자살 시도가 많은 곳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 지난해부터 가동한 한강 자살 방지 시스템의 실효성 여부가 다시금 도마에

 

   올랐으며, 서울시와 마포구 또한 마포대교에서 발생하는 자살 시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변만을 내놓은 상태다.

 

   한편, 금일 오전 10시경에는 이 모양의 시신을 수습하던 119 대원들이 마포대교 하단에서 투신한 

 

   회사원 김 모씨(30세)를 발견, 구출에 성공했다. 김 씨는 현재 혼수상태이며,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되어 집중 치료 중이다.



 

- 完 - (2019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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