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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창작

신의 주사위 (1)

by 쟝파스타 2019. 8. 23.

출처 : https://www.cmcsungmo.or.kr/page/board/news/130164?p=1&s=10&q=%7B%22all%22%3A%22%EC%B9%98%EC%9C%A0%22%7D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당시 성필은 굉장히 안 좋은 상황에 처해있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문제가 생겨 책임을 지고 사직했어야 했고,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지병으로 입원하셨으며, 결혼까지 약속했던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잠적해버렸다.

 

   성필은 그의 30여 년의 인생에서 ‘최악' 혹은 ‘밑바닥'이라는 것을 경험해보고 있던 차였다. 재취업을 위해 오전엔 구직 사이트를 꾸준히 체크하고, 점심 식사 이후엔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향하는 것이 당시 그의 일상이었다.

 

   “밥은 잘 먹니…? 미안해.. 엄마가 이것저것 많이 해줘야 하는데…”

 

   “아니에요. 어머니, 걱정 마시고 쾌차하시는 데에만 신경 쓰세요.”

 

   “그래야지… 미안하다, 엄마가…”

 

   평생 성필과 그의 아버지, 이 두 남자 뒷바라지에 인생을 보낸 그의 어머니는 성필이 간호를 위해 병실에 찾아갈 때마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했다. 처음엔 이 ‘미안하다'는 말에 성필의 가슴이 미어졌으나, 어느덧 병간호가 한 달이 넘어가자 어머니의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나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말복을 앞둔 그해 8월 중순, 서울의 최고 기온이 34도를 기록했던 날이었다. 성필의 어머니가 입원한 4인실도 푹푹 찌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에어컨을 최대로 가동해도 4인의 병자와 간병인, 혹은 그 가족들이 뿜어내는 36.5도 이상의 열기는 병실을 찜통으로 만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성필은 짜증이 났다.

 

   그를 희생양 삼아 사직을 권했던 전 직장의 이 팀장이 원망스러웠다. 그의 사직 소식을 듣고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성필을 떠나버린 전 여자친구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저 여자는 아니라고, 다른 여자를 찾아보라고 했던 친구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던 성필 스스로가 병신같았다. 또…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 와중에 지병이 도진 그의 어머니까지도 원망스러웠다.

 

   이대로 이 병실에 있다간 안 되겠다 싶어, 성필은 약을 먹고 잠든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병원 내부를 정처 없이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복도가 더 시원했다. 다행히 여의도 성모병원의 냉방 및 공조 시스템은 뛰어났기 때문에, 짜증이 났던 성필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스스로 비뚤어진 마음을 다잡으며 ‘재활의학과'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성필씨, 성필씨 맞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아! 영일씨!”

 

   성필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이영일 씨였다. 전 직장의 거래처 중 한곳에서 근무하던 사람으로, 3년 전에 알게 된 사이였다. 나이도 동년배였고, 같은 천주교인이었으며, 무엇보다 진실성이 느껴지던 사람이었다. 항상 성필에게 무슨 고민이 있으면 그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걱정 마세요. 제가 기도드릴게요'라고 격려를 해주던, 성필에겐 사회생활을 통해 알게 된 얼마 안 되는 이른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일과 성필의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 2년 전, 영일은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 이후로 그들의 교류는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성필도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영일을 찾아가 위로와 격려를 해주려 했으나, 소식이 닿지 않아 안타까워했던 차였다. 그 영일이 지금 여의도 성모병원 재활의학과 앞에서 성필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영일이 성필에게 물었다.

 

   “아…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지금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어요.”

 

   “그래요? 회사는…?”

 

   “그게…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영일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뭔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겠다는 듯이. 그의 그런 표정을 보니 괜스레 성필의 시야가 잠시 뿌옇게 변했다.

 

   “그나저나 영일 씨는 어떻게 된 거에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들었어요. 정말 걱정했었는데, 연락도 안 되고...”

 

   “네… 큰 사고였죠. 거의 죽을뻔한 상태여서, 아마 가족들도 경황이 없었을 거에요. 결국 이렇게 살아나서 재활에 전념하고 있지만요.”

 

  영일은 그렇게 담담하게 대답하며 본인의 목발을 두들겼다. 팅, 팅. 

 

  성필 역시 그런 영일에게 딱히 해줄 이야기가 없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2년 만에 재회한 두 남자의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영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나니까 좋네요. 이러지 말고… 지금 바빠요? 커피 한잔할래요?”

 

    “아 네... “

 

   성필은 잠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후 1시 30분… 어머니가 잠든 시간이 30분 전이니, 적어도 4시까진 시간이 있다.

 

   “좋죠. 2년만인데, 물론이죠”

 

   그렇게 그들은 성모병원 내 위치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병원 내에 위치한 커피숍은 사실 두 남자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장소는 아니었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사람들로 붐비었으며, 성필처럼 간호로 인해 지쳐버린 듯한 표정의 사람들 역시 무기력한 표정으로 허탈하게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성필과 영일이 찾은 커피숍은 서울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이었지만, 무거운 긴장감과 허탈함이 위태롭게 차 있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그래도 두 남자는 그 커피숍 외엔 이야기를 나눌 만한 다른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날은 서울의 최고 기온이 34도를 기록한 날이었고, 성필 역시 어머니를 혼자 두고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순 없었기 때문이다. 영일 역시 목발을 짚은 상태로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하긴 어려워 보였다.

 

   “진짜 덥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몇 십 년 만의 무더위라는데…”

 

   “진짜 이러다가 우리나라에서도 동남아처럼 바나나나 망고가 재배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 실제로 포항인가 어디에서는 비닐하우스에서 바나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더군요."

 

   “그래요…?”

 

   일단 두 사람은 날씨를 통해 가볍게 대화를 시작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날씨'보다 대화를 시작하기 더 알맞은 화제를 찾는 것은 꽤 어려운 법 아닌가.

 

   “그건 그렇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요, 성필 씨?”

 

   먼저 성필의 근황에 관해 질문한 것은 영일이었다. 사실, 성필의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이는 동안 그는 친구들과 만남도 거부하고 있는 차였다. 나락으로 빠져버린 자신을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성필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성필은 그간 그의 행적과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불행들을 영일에게 마치 고해성사하듯 담담히, 그러나 진실하게 털어놨다.

 

   “정말… 주님이 정말 계신다면,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 물론 저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거기까지 말한 성필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살짝 다시 흐려진 그의 시야에서 영일의 철제 목발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 괜찮아요. 계속 말씀하세요.”

 

   영일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성필의 이야기를 진행했다.

 

   성필의 이야기를 다 경청한 영일은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흠… 그렇군요. 참 힘들었겠네요.”

 

   “네, 지금은 진짜 내 인생이 거지 같아요. 정말 이러면 안 되지만 죽고 싶기까지 한 심정이라니까요…”

 

   “음… 그렇군요. 근데, 그것참… 죽을려고 해도 TO가 있어야 될 거에요.”

 

   순간 성필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TO? 뭐, 조직이나 단체에 정원을 의미하는 그 ‘TO’ 말이야?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TO…? TO랑 내가 죽고 싶은 심정을 갖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영일은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 체 성필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영일의 얼굴은 보는 사람에 따라선 냉소적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 그 상관관계를 알고 싶나요…? 아마 믿기 어려우실 텐데…”

 

   성필은 영일에게 자신의 근황을 털어놓느라 축축해졌던 그의 마음을 다시 건조시키며 생각했다. 도대체 이 사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간 성필이 알고 있던 영일의 모습을, 그날의 성모병원 커피숍에선 더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긴,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데 사고 이전의 모습을 다시 기대하긴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영일은 ‘생과 사'의 경계에서 다시 ‘생'의 세계로 돌아온 것 아닌가.

 

   “지금 장난하시는 건 아니죠…? 저는 영일 씨를 믿고 저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장난이라뇨, 전 성필 씨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해서 들었습니다.”

  

   영일이 비록 성필이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냉소적인 얼굴을 하고 있긴 했지만,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님을 성필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는 더더욱.

 

   성필의 마음과 머리가 점점 ‘이성'적으로 건조해지기 충분해진 모양이다. 이제 성필은 영일이 말한 ‘죽음과 TO의 상관관계'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대체 죽는 것과 TO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죠…?”

 

   “물론, 죽음과 TO의 관계를 쉽게 유추하긴 어렵죠.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성필 씨께서 제가 꺼낸 이 두 개념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의심과 흥미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당연하죠… 수많은 사람을 계획적으로 대량학살한 홀로코스트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면 몰라도…”

 

   “하하…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그래요…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믿을지, 아니면 그냥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할지에 대해선 전적으로 성필 씨에게 달려있어요. 저 역시도 저에게 벌어진 이 사건이 지금까지도 진짜인지 아니면 그냥 환상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으니까…”

 

 

- 신의 주사위 (2) 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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