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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창작

신의 주사위 (2)

by 쟝파스타 2019. 9. 2.

출처 : https://avangs.info/resource_200x/166459

 

   영일은 그렇게 의심과 긴장으로 꼬이기 시작한 성필의 마음을 잠시 풀어주며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좋아요. 제가 약 2년 전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은 알고 계셨죠?”

 

   “네… 우연히 영일씨 거래처 동료분을 통해서 들었어요… 업무 중에 이동하시다가 화물차에 충돌하셨다고…”

 

   “그래요… 일단은.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전 교통사고를 당한 게 아니에요.”

 

   성필은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영일의 목발과 그의 얼굴을 살폈다. 교통사고가 아니었다고? 그러면… 재활의학과에서 걸어 나오던 그와 그의 목발은 뭐지…?

 

   “사실은… 부끄럽지만 저는 2년 전에 마포대교에서 투신했었어요.”

 

   “아…”

 

   영일은 본인의 투신 이야기를 정말 담담하게, 그러나 살짝 죄책감을 느끼는 듯하며 꺼냈다. 마치 지난 중복에 그가 삼계탕 대신 보신탕을 먹은 사실을 애견인 앞에서 고백하는 사람처럼.

 

   “성필 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들 일이라는 게 정말 스트레스가 심한 일이었잖아요. 경쟁사도 많고, 하루하루 성과로 평판이 달라지는 세계였으니까…”

 

   그래, 그랬던 세계'였지’. 하루아침에 지점의 에이스가 병신이 되고, 만년 천덕꾸러기가 역시 하루 만에 업계의 기린아가 되어버리는, 그런 세계. 뭐, 이 세상에서 먹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만 성필과 영일이 몸담았었던 업계는 실적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유독 심한 곳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곳을 ‘본인의 수명과 높은 연봉을 맞바꾸는 곳’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여튼 2년 전, 저는 정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죠.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실적은 나락이었고, 당시 지점에서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으니까요. 당시 여자친구의 권유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효과는 없었어요. 자낙스도, 항우울제도, 수면유도제도 당시 제게 별다른 힘이 되진 못했죠. 간단한 해답이 있긴 했어요. ‘퇴직'이라는… 그래도 성필 씨도 알겠지만, 이 업계에 들어오기까지 저는 정말 부단한 노력을 했고, 곧 저만의 가정을 이룰 상황에서 ‘퇴직'이라는 선택지를 고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죠. 아마 성필 씨도 이해할 거에요.”

 

  성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하긴, 그놈의 돈이 문제지.

 

   “뭐, 뾰족한 수가 있나요. 계속 참으면서, 자신을 다독이면서 회사를 다닐 수밖에. 그러다 그때 이 터진 거죠.”

 

   2년 전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영일은 추석 대목을 앞두고 유독 심한 실적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밤잠을 설치다가 결국 지각을 했어요. 보통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그날은 택시를 탔죠. 이미 출근 시각을 넘겼지만 어쨌든 회사를 가긴 갔어야 하니까.”

 

   영일은 정말 죽기보다 싫은 심정으로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고 한다. 

 

   “그 때였어요. 제 머릿속에서 ‘죽자'라는 외침이 들렸던 게…”

 

   영일은 잠시 미간을 찌뿌리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외침을 듣고 저는 기사 분에게 여의도가 아니라 마포대교 하단으로 목적지를 변경해서 내려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기사님은 저의 이런 갑작스러운 요청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겠죠. 하여튼, 마포대교 하단에도 IFC, 트윈 타워 등 수 많은 빌딩과 직장들이 있으니까…”

 

   영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성필은 도저히 영일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성필은 단지 유난히 번쩍거리는 그의 목발만을 쳐다보며 영일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9월이어도 날은 덥더군요. 그래도 한 번 마음 먹으니 오히려 기분이 편했어요. 어머니에게 회사 출근 잘했다고 문자를 드리고, 핸드폰 바탕화면에 미리 준비한 유서를 웹하드에서 다운받아 링크해놨어요. 뭐, 저 정도의 상황이 되면 유서는 미리 준비해놓는 법이니까.”

 

   자살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던 성필 이지만, 영일의 그런 행동이 이해는 갔다. 그리고 영일이 미리 준비해놓은 유서의 존재를 통해 그가 당시 느끼던 죽음에 대한 갈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이 가능했다.

 

   “왜, 영화나 TV에서 자살하다 실패한 사람들 이야기 종종 나오잖아요. 특히 투신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보면 꼭 신발을 벗고 투신하던데 저는 평소에 그 사람들이 왜 저럴까 싶었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저 역시도 투신 전에 신발을 벗더라고요. 마포대교 난간을 넘기 전에. 한국인의 DNA에 그런 게 각인되어 있나 봐요. 뭐, 거창하게 DNA까진 아니더라도 후천적인 교육의 결과일지도 모르죠. ‘남의 집에 들어갈 땐 신발을 벗어야 한다.’라는 예절처럼.”

 

   “...그리고 투신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다시… 살아나서 재활을 시작했다. 이 말인가요…?”

 

   영일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성필이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영일에겐 미안하지만 성필에겐 뻔한 이야기 아닌가. 죽다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 그러니, 성필, 네가 어떤 거지 같은 상황에 빠져 있든지 간에 힘을 내고 열심히 살아라. 그런 이야기를 영일은 성필에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안하지만 그런 설교라면 성필은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하여튼 지금 성필에겐 이 세상 모든 것이 거지 같았으니.

 

    “아… 뭐 보기에 따라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제가 말하려는 죽음과 TO에 관련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영일의 말을 긴장하며 경청하던 성필은 이내 경직된 자세를 풀고 팔짱을 끼기 시작했다. 그래, 한 번 지껄여보시지. 그리고 영일은 다시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 저는 ‘신'으로 추정되는 존재를 만났거든요.”

 

   점입가경이군. 이젠 ‘신'까지. 성필은 확신했다. 더 이상 성필이 오늘 만난 영일은 그가 알던 영일이 아니다. 영일의 투신과 재활 과정이 그에겐 큰 시련이었음이 확실했다. 어쨌든, 사람이 ‘투신'에 실패했다는 큰 트라우마를 통해 성필이 상상할 수 없는 후유증을 겪고 있을 테니.

 

   “‘신’… 이라고요…?”

 

   “아, 어디까지 ‘추정'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신'을 만나본 사람은 없어요. 아니 없을 거예요.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증명하겠으며 또 자칭 ‘신을 만난 사람들'이 서로 만난 ‘신'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겠어요.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다행히 영일은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거나, 본인이 본 것에 대해 아직까진 100% 확신을 하고 있진 않은 듯했다.

 

   “그래서 ‘추정'이라는 표현을 쓰신 거군요.”

 

   “맞습니다. 정확해요.”

 

   “좋아요. 그러면, 저를 위해 혹은 영일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추정'이라는 표현을 쓰신 건가요? 스스로는 영일 씨가 만났다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생각하나요?”

 

   “흠… 답변하기 곤란하네요. 이 대답을 통해 2년 만에 저를 만난 성필 씨께서 저에 대한 이미지와 인상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으니…”

 

   여전히 냉소적인 표정으로 영일은 말했다.

 

   “그건 걱정 마세요. 저 역시도 이미 이 세상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오래전부터 인정한 바니까. 제가 이런 ‘나락'에 빠져버렸을지 누가 알았겠어요. ‘신'이 있다면, 정말 그래선 안 되는 거죠. 그러니, 당신이 만났다는 그 ‘신' 이야기,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영일은 성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맞아요. 저는 스스로 그 당시 제가 만난 존재가 ‘신'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가 마포대교에서 투신 한 직후였어요. 제가 난간에서 한강으로 떨어짐과 동시였는지 아니면 수면에 부딪히면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투신 후 눈을 떴을 때 저는 안개가 자욱한 어떤 곳으로 이동해있었어요.”

 

   “안개가 자욱한 곳…? 그곳에서 영일씨 당신이 ‘신'을 만났다… 이건가요…? 그래, 뭔 말을 하던가요 그 ‘신'이, 당신에게.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 돌아가라?”

 

   성필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영일의 이야기를 끊으며 그를 힐난하듯 물었다. 이전까지 성필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자괴감과 긴장, 놀라움의 감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음… 일단 들어보세요. 하여튼 그곳엔 굉장히 짙은 안개가 끼어있었어요. ‘이곳이 사후세계인가?' 싶었죠.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구나. 베드로 성인부터 만날 줄 알았는데…’ 뭐 이런 생각도 들고. 그때 교복을 입은 한 여고생이 보였어요. 저 앞에.”

 

   “여고생…?”

 

   “네, 평범한 우리나라 여고생이요. 교복 입고, 한 17, 18살 쯤 되었으려나.”

 

   “그래서요…?”

 

   “뭐, 일단 그 여고생과 나는 눈만 마주칠 뿐 아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죠. 그곳이 정말 ‘사후세계'라면 할 말 다 한 것 아니겠어요. 그 아이도 저처럼 ‘생'과는 멀어진 행위를 했던 거겠죠.”

 

   “아니면 당했거나.”

 

   “그럴 지도요… 죽음에 이르는 길은 아주 다양하니까.”

 

   “후… 그렇죠…”

 

   “그러던 중, 회색 양복을 입은 노인 한 명이 저희에게 다가왔어요. 아주 귀찮다는 듯이. 그리고 곤란한 표정으로 말이죠.”

 

   “회색 양복을 입은 노인…? 그 사람이…?”

 

   영일은 대답 대신 긍정의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상상했던 ‘신'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데요…? 장발을 늘어뜨리거나, 파란 옷을 입은 귀부인 같은 이미지로 막연히 상상했었는데…”

 

   “뭐… 저도 그랬었죠. 하여튼 우린 모태신앙이니. 그래도 성필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죽어본 적이 없으니 그 존재에게 ‘왜 당신은 장발을 늘어뜨리지 않았죠?’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가 투신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잖아요.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영일의 말을 성필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더욱 공감 가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성인 남성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 한다는 명분으로 훈련소에 끌려와,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그런 상황을 상상해보면 더 이해가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군대에서의 생활을 미리 경험한 것도 아니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더더욱 모르기 때문에 일단 상황에 순응하고 보는 그런 상황.

 

   “하여튼 그 회색 양복의 노인은 정말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저희 둘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어요.

 

   ‘아… 곤란하네… 오늘은 TO가 꽉 차서 한 명밖에 못 죽어.’”

 

   성필은 본인의 등과 목덜미가 살짝 차가워짐을 느꼈다.

 

   “뭐, 그 노인이 자세한 설명을 해 준 것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죽는다'는 것, 혹은 ‘사후세계로의 이동'을 위해서는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제 예상으로는, 하루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의 TO가 정해져 있고, ‘사후세계’라고 추정되는 곳에는 그 TO가 넘치지 않게 나름 관리하는 시스템이나 규율이 존재하는 듯해요.”

 

   “잠깐만요.”

 

   그 이야기를 들은 성필은 잠시 영일의 이야기를 멈추고 그에게 질문했다.

 

 

 

- 신의 주사위 (3) 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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