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창작

신의 주사위 (3)

by 쟝파스타 2019. 9. 29.

출처 : https://www.banggood.com/ko/KCASA-FS-01-Set-Of-5-Black-Skull-Dice-Grinning-Skull-Deluxe-Devil-Poker-Dice-Gothic-Gambling-p-1248980.html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동시에 발생하는 수많은 사망자들은 어떻게 설명하죠? 안타깝지만, 역사적으로 하루에 수천 혹은 수만 명이 한 번에 사망한 일은 많아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1945년 8월에 발생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만 보더라도…”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여튼 그런 시스템이나 규율이 있다는 것을 ‘추정'만 할 뿐이죠. 뭐든 완벽한 시스템은 없는 법이잖아요. 그곳이 아무리 사후세계라도, 뭔가 착오는 발생할 수 있는 법이고,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제가 투신했을 때 그런 ‘착오'가 발생한 모양이죠. 제가 겪은 경험상 그렇게밖에 설명을 할 수밖에 없고요.”

 

   영일의 말이 맞았다. 그가 겪은 경험이 환상이든 진실이든. 오히려 성필의 질문에 대해 ‘모르겠다'라고 한 영일의 허심탄회한 답변이 성필에게 영일이 겪은 경험담의 신뢰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곤란해하던 그 노인은 저와 여고생에게 어떤 제안을 했어요. 그로서도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에요. 하긴… 관리자로서 본인이 관리하는 시스템의 허점을 타인에게 인정해야 하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일도 없겠죠.”

 

   “그가 ‘관리자'가 맞다면 말이죠.”

 

   영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그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한 제안은 간단했어요. 오늘은 죽을 수 있는 사람의 TO가 한자리 밖에 남지 않았으니, 당신들 둘이서 죽을 사람을 결정해라. 무엇이든 좋다. 가위바위보를 하든 서로 합의를 하든, 아니면 주사위를 던지든… 단 10분 안으로 결정을 해주길 바란다.”

 

   “굉장히 무책임한 제안인데요…?”

 

   “음… 듣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선 무책임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나름 관대하고 배려심 있는 제안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여튼, ‘자유의지'의 유효성은 ‘그곳'에서도 입증된 셈이니까요.”

 

   “자유의지… 그럴지도 모르죠… 그나마 다행이네요… 숙명론을 다시 부정할 기회를 주셔서.”

 

   “그리고 그 노인은 본인의 양복 안에서 큼지막한 전자시계를 꺼냈어요. 그렇게 큰 전자시계가 어떻게 그의 품에서 나왔는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그런 의문도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됐죠. 그곳은 일단 제가 살던,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10분의 타이머를 맞추기 시작했어요.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거죠.”

 

   “죽음의 결정을 위한 카운트다운…이라…”

 

   “웃기죠…? 보통 쏘우와 같은 할리우드 호러 영화들 보면 이럴 땐 누가 살아남을까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의 경우엔 반대였으니.”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죠.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에 떨어지는 미사일들도 나름대로 발사 전에는 카운트다운을 진행할 테니…”

 

   “저와 함께 있던 여고생은 매우 소극적인 친구였던 것 같아요. 10분의 타이머가 작동되자 어쩔 줄 몰라했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어요. 그나마 나이가 많았던 제가 뭔가를 이끌어나가야 했어요. 그래서 일단 제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죠.”




   영일은 그 소녀에게 먼저 이름을 물어봤다. 그 소녀의 이름은 이새롬, 나이는 18살이며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영일이 말을 걸자 소극적으로 보였던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본인은 꼭 죽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던가… 그러나 그녀의 발광 아닌 발광을 영일이 들어주는 동안 3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영일은 그녀의 울부짖음을 제지하며 말했다.

 

   “잠깐, 새롬아. 내 이름은 영일이야, 그래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어. 자, 그런데 우리는 지금 7분이라는 시간밖에 없어, 그렇지? 그래, 너도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나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 그런데 나도 정말 죽고 싶어. 이 7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 둘 다 못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잠시만 진정하고 우리는 지금 누가 죽을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해. 내 말 이해하겠니?”

 

   새롬은 계속 흐느꼈지만, 다행히 영일의 말을 듣고 울부짖음을 멈췄다.

 

   “결정의 방식으로 가위바위보는 정말 아닌 것 같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죽기까지 정말 많은 고생을 했고 굳은 결심 끝에 여기까지 온 건데, 가위바위보로 죽음과 삶이 결정된다는 건 너무 우스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새롬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머의 시각은 어느덧 5분 50초가 되어있었다.

 

   영일은 빨리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먼저 죽을 권리를 양보하긴 어려울 거야. 그렇다면 주사위는 어떨까? 그래도 주사위는 가위바위보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사실 저는 뭐든 상관없어요. 아저씨 대신 제가 죽을 수 있다면요…”

 

   “그래, 하긴, 가위바위보나 주사위나 무슨 차이겠냐마는 우리에겐 주어진 시간이 없으니…”

 

   영일이 규칙을 정했다. 우선 누가 먼저 주사위를 던질지 결정하고, 둘 중 높은 수가 나온 사람이 죽기. 만약 똑같은 수가 나오면 다시 던지는 것으로. 던질 순서를 정하기 위해 영일은 새롬에게 먼저 주사위를 던질 것을 양보했다. 레이디 퍼스트, 매사 사람들에게 신사적인 그 다운 배려였다. 물론 그 상황에서 어울리는 배려였는지에 관해서는 판단할 여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곧 새롬이 주사위를 던졌다.

 

   “똑 또르르르….”

 

   새롬이 던진 주사위의 눈금은 2.

 

   이어서 영일이 주사위를 던졌다.

 

   “또르르르…”

 

   영일이 던진 주사위의 눈금은 4.

 

   영일이 선(先)이었다.

 

   “그래, 그러면 이 아저씨가 먼저 주사위를 던질게, 새롬아. 이제부터 나오는 주사위의 수로 누가 먼저 죽는지 결정되는 거야 알겠니?”

 

   새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울음은 완전히 멈춘 모양이었다.

 

   영일은 잠시 회색 양복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둘의 주사위 놀음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단지 굉장히 귀찮다는 듯이 타이머의 카운트다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영일은 다시 주사위를 손에 쥐었다. 한 손에 충분히 쥐어지는 작은 크기의, 흔한 주사위였다. 흰색 바탕에, 검은 눈금이 박힌.

 

   영일은 어릴 때 친구들과 부루마블이라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무인도를 탈출하기 위해 주사위를 던진 이후로 이렇게 간절히 주사위를 다시 던져보긴 처음이었다. 주사위를 손에 쥔 영일의 오른손에 땀이 배었다.

 

   “똑 또... 르르르르….”

 

   영일이 던진 주사위의 눈금은 4. 앞서 새롬과 선을 정할 때와 같은 눈금이었다.

   영일은 떨리는 손으로 그가 던진 주사위를 집어 새롬에게 건넸다.

 

   새롬 역시 떨리는 손으로 주사위를 던졌다.

 

   “똑, 또르르르….”

 

   새롬이 던진 주사위의 눈금은 6. 

 

   새롬이 이겼다.

 

   “하….”

 

   영일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반대로 새롬은 활짝 웃었다.

 

   “아저씨, 제가 6이에요. 제가 이긴 거 맞죠?”

 

   “그래…”

 

   회색 양복의 노인이 그제야 타이머를 멈췄다. 타이머의 시간은 2분 10초를 끝으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 신의 주사위 (4)에서 계속 -

반응형

'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의 주사위 (4)  (1) 2019.10.06
신의 주사위 (2)  (1) 2019.09.02
신의 주사위 (1)  (0) 2019.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