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궁금증 하나.
우리 부모님은 전라북도가 고향이시다. 아버지는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오셔서 서울에 위치한 고등학교의 교사가 되셨고,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상경하셔서 결혼하신 후 형과 나를 낳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동생들도 하나 둘 씩 고향을 떠나 우리 집을 거쳐 서울 혹은 경기권에 자리잡아 살고 계신다.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설이나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 자가용 혹은 기차 등을 이용해 전북에 내려가야 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괜찮았지만, 초등학생때까지는 전북으로 내려가는 길이 너무나도 지루하고 싫었다. 차 속에서 최소 7~8시간을 버텨야 하는 이유가 나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90년대 추석 귀성 풍경. 아버지 승용차를 타고 갈 때면 너무나도 지루해서 힘들었다.
(출처 : KBS News)
어린 시절의 궁금증 둘.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는 주말이 되면 TV로 야구 중계를 보셨다. 요즘과 달리 TV가 집에 한 대 밖에 없던 시절, 그리고 채널 결정 권한이 곧 가장의 권위를 상징하던 그 때 아버지가 선택한 TV 채널은 그 집안의 진리요 법이나 다름 없었다. 축구처럼 다이나믹하지도 않고 또 3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공놀이를 계속 바라보시며 때로는 화를 내시고 박수를 치며 흥분하던 아버지와 형이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고 싶은 다른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야구’라는 스포츠에게 채널의 우선 순위를 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화가 났고 짜증이 났다.
당시로 보나 지금에서 보나 상당히 촌스러워 보이는 해태 타이거즈의 빨검 유니폼.그러나, 이 유니폼은 상대팀으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출처 : 일간 스포츠 http://news.joins.com/article/5819019)
그러나 한편으론 저 공놀이가 도대체 뭐길래 평소에 말수가 적으시고 감정 표현이 없으신 아버지를 흥분시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보게 된 TV 속에는 ‘선동렬’이라는 뚱한 표정의 피부가 좋지 않은 아저씨가 있었고, ‘이종범’이라는 다소 호리호리하고 재빠른 아저씨가 자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촌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의 빨간 상의와 검은 하의를 입고 있었으며 또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을 던지고 칠 때 그 아저씨들은 상당히 ‘절박해’보였던 기억이 났다.
아, 선동렬 아저씨는 빼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최동원 투수와 선동열 투수의 맞대결 당시 사진.그들의 정식 맞대결은 총 3번이 있었다 한다.이 맞대결을 라이브로 보신 아버지가 나중에서야 부러워졌다.
(출처 : http://ch.yes24.com/Article/View/18847)
IMF, 그리고 ‘오, 필승 코리아’
98년 IMF 사태가 터지고 얼마 있지 않아서 ‘해태 타이거즈’는 ‘기아 자동차 그룹’으로 인수되었다. 해태의 역사를 그대로 가져가긴 했지만, 아버지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프로야구를 보시지 않는다. 그렇게 주말 혹은 금요일 저녁 우리 집 거실의 TV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야구 중계는 그렇게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의 4강 신화로 인해 나의 스포츠 관심사는 야구에서 축구로 이어지고, 그렇게 내 인생에서 ‘야구’는 잠시 멀어져갔다.
온 국민을 환호와 열망의 분위기로 이끈 2002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당시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나의 친형은 고등학교 3학년 이었다.이때 '저놈의 월드컵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한숨을 내쉬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출처 : 뉴스줌 http://news.zum.com/articles/2630461)
2009년 : 기아 우승! 기아 우승!
그러던 중 대학에 입학하고 군 전역을 한 뒤,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KBO 최다 연패와 최저 승률 기록을 가지고 있는 비운의 팀 삼미. 소설의 주인공은 인천 태생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삼미를 응원할 수 밖에 없었고 작가는 그의 성장기를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과 설립 과정에 맞춰 담담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역시 사회의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IMF라는 한국 역사의 굵직했던 비극적 사건을 피해갈 순 없었고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을 접했던 것이 2009년. 내가 갓 복학했을 때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우리나라 KBO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 그 해에는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을 하게 된다. 아직 야구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친형 덕분에 나는 당시 코리안 시리즈 7차전을 잠실 구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TV 영상으론 느낄 수 없지만 나지완 선수의 끝내기 홈런 당시 ‘딱’ 소리와 함께 그 타구가 담장을 넘기 직전까지 약 1초 정도 잠실 구장에서 정적이 있었음을 확실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다시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2009년 KS 7차전 당시 나지완 선수의 끝내기 홈런.
이번 시리즈에서도 그는 끝내기는 아니지만 팀의 중요한 승리를 이끈 홈런을
잠실에서, 비슷한 곳으로 쏘아 올렸다.
(출처 :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6vEh&articleno=16102697&categoryId=2®dt=20091024232001)
암흑기, 리빌딩, 그리고 2017년 : 다시 주어진 기회
그렇게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하기 시작했지만, 공교롭게도 타이거즈는 2009년 우승 당시의 위엄을 보여주진 못했다. 간간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긴 했지만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고 결국 16년까지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나 역시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회의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꿈이나 방향도 없이, 경영학과의 분위기에 휩쓸려 1년 반동안 CPA 준비를 하다 실패하고 부랴부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9학기를 다닌 끝에 국내 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때만 해도 나의 인생은 탄탄대로일 줄만 알았다. 2013년 8월, 신입 사원 연수를 마치고 처음 정식으로 회사에 출근하던 날. 나를 자랑스럽게 쳐다보시던 어머니의 시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학교와 사회는 엄연히 다른 세계였고, 이에 대한 심적 준비가 나는 충분히 되어있지 않았다. 현업으로부터 자료를 받기 위해 다른 부서가 모두 퇴근해도 남아있고 때론 주말 출근 마저도 당연시 여기며 회사를 다니던 시절. 상사분들의 기분에 따라 보고의 타이밍이 달라져야만 했던 그 때. 그러면서도 ‘대기업’에 다닌다는 그 옹졸한 자부심으로 나 자신을 타이르며 새벽 지하철을 타고 5호선 여의도역으로 향하던 아침의 풍경. 무엇보다 이런 생활을 약 15년 동안 더 해야 한다는 자신이, 나에게는 없었다.
출근길의 풍경. 나 역시 지하철에서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여의도로 향했다.
(출처 :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20805eaac55d436dbf021174232dadee)
그리고 2016년 8월, 나는 더 나은,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길을 찾기 위해 ‘퇴사’를 결심한다. 돌려말할 생각은 없다. 퇴사 후 약 3개월은 더 이상 회사라는 공간에 속박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했지만 그 이후 지금의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지의 9개월은 지옥과도 다름 없었다. 더 나은 미래를 찾기 위해 퇴사를 했지만, 그러기엔 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서울 소재 대학 경영학과 출신과 대기업 4년의 경력이 어떻게든 길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오만함이 나를 더욱 나락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것이다.
집에는 도서관을 간다고 하고 아침부터 PC방에 들러 잠시 채용공고를 확인하며 적당히 이력서를 수정하여 제출하고 저녁때까지 게임을 하던, 꿈과 희망도 없던 그 때. ‘요즘 어때?’ 라는 사소한 질문에 딱히 할 말이 없는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친구들과의 만남마저도 멀리했던 백수 시절.
‘퇴사’를 하면 뭔가 내 인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거라는 치기 어리고 무모했던 생각이 나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찍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백수생활 근 1년만에 지금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열심히, 나름 절박한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는 중이다. 사소한 욕망을 자제하고 주어진 스케줄대로 생활하는 어떻게 보면 ‘군대’와도 같은 곳에서 생활하게 된 지금의 삶이 그래도 난 행복하다. 적어도 여기엔 내가 해결해야 할 ‘미션’이 있고, 배워야 할 ‘언어’와 ‘행동’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곳엔 ‘사업가’가 되기 위해 함께 땀흘리며 서로를 격려해주는 동료들이 있다.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쉴 겸 다시 읽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이렇듯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발자취를 ‘야구’, 그리고 ‘타이거즈’라는 코드에 맞춰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로 만들어줬다. 어쩌면 박민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한 번 실수해도 그것을 타박하지 않고 ‘괜찮아. 실수할 수 있어. 우리 다시 한 번 해보자. 힘을 내’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믿음이 아닐까 싶다. 실패를 접어두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다시 나아기기 위해 준비하는 나 자신.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들과 팬들 또한 이런 나 자신과 지금의 젊은이들을 향해 응원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2009년 우승의 영광을 타이거즈가 다시 재현해 줄 것이라는 것도.
이 글을 다시 다듬고, 업로드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타이거즈는 결국 11번째 우승을 일궈냈다.그들의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과 우승이라는 보답에 팬으로서 감사를 보낸다.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기태 감독님께도...
(출처 : 동아닷컴 http://news.donga.com/East/MainNews/3/all/20171031/87035303/1)
- 2017년 10월 27일, 용인에서
후기
이 글을 쓰기 전 날인 어제는 2017년 한국시리즈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2차전이 있던 날이었다. 인도네시아어 단어 시험과 미션 수행 및 영어 PT 준비로 경기가 있었던 줄도 모르고 있던 나에게 어머니로부터 다음과 같이 카톡이 왔다. “기아가 이겼네..^^ 양현종이라는 투수가 잘 던지는구나…!…아버지도 많이 좋아하신다…^^”
2009년 처음 선발로 출전하여 우승에 일조한 이후, 2017년 그는 이제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좌완 투수로 성장했고,
팀을 우승으로까지 이끌었다.
향후 그의 행보에 주목해본다.
(출처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RHGfVURou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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