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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슬프고도 힘들었던 거짓말(하)

by 쟝파스타 2017. 4. 11.

슬프고도 힘들었던 거짓말(상) 에서 계속...

 

  어쨌든 철저한 LG트윈스 연구 덕택에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LG팬인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즌 막바지에 팀원 전부가 회식으로 LG 트윈스 경기를 보러가게 되었다. 문제는 LG트윈스 팬이라는 내가 응원가를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날 나는 일부러 심부름을 하는 척 하며 좌석을 자주 비웠고, 어찌저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2013년, 긴 암흑기 끝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LG트윈스

(출처 : http://m.thesports.cc/tag/%ED%94%84%EB%A1%9C%EC%95%BC%EA%B5%AC%20%ED%94%8C%EB%A0%88%EC%9D%B4%EC%98%A4%ED%94%84)

 

  그러나 LG 트윈스는 2013년에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해버렸고, 이로 인해 언제 또 팀에서 야구를 보러 갈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LG트윈스와 선수들의 응원가까지 섭렵해야 했다. 그리고 LG유니폼까지 구입했다. KIA 타이거즈 유니폼은 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2013년 시즌이 끝나 한숨 돌리긴 했지만, 2014년에도 LG트윈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결국 나는 회사에선 LG트윈스, 사석에선 KIA 타이거즈 팬이라는 이중생활을 해야만 했다. 내가 KIA 타이거즈 팬임을 아는 친구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창씨개명을 했다!'고 까지 비난을 한 적도 있었다.

 

한 야구팀의 골수팬에게, 팀을 바꾸는 일이란 '창씨개명'과도 버금가는 사건이라는 것을,

야구팬 여러분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출처 : http://koc.chunjae.co.kr/Dic/dicDetail.do?idx=1221)

 

  사실, 그런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것을, 한국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라 본다. 야구팀은 하나의 종교와도 같은 것인데, 나는 그것을 회사 생활을 위해 포기해야 했으니 말이다.

  결국 나의 이런 LG트윈스 팬 행세는 내가 직장을 그만둘 때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나의 퇴직기념 회식자리에서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한 분들에게 '내가 LG팬이 아니며, 사실은 기아 타이거즈 팬이었고, 그동안 속여서 죄송하다'라고 사과드렸다.

 

  부산 출신이신 이차장님께서 말없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셨던 것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나는 이 거짓말을 통해, 사람의 신념과 기호를 숨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깨달았다. 특히 팀원들과 야구를 보러 잠실 운동장에 간 날, 하필 상대가 KIA 타이거즈인 날은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비록 좋아하는 것을 때로는 싫은 척, 싫어하는 것을 때로는 좋은 척 해야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라지만, 나는 앞으로 최소한 내 자신을 부정하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며...

 

  2017년 프로야구 개막도 이제 2주차에 접어들고 있다. 아무쪼록, 롯데팬이든 LG팬이든 KIA팬이든, 그리고 그 밖의 구단 팬이든 간에 서로를 존중해주고, 더 나아가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팀을 응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우리나라 직장 생활에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7년 프로야구 개막 전, 미디어 데이 당시 선수들의 모습.

모두 부상 없이 팬들을 즐겁게 해 주는 플레이 부탁드립니다.

(출처 : http://www.diodeo.com/news/view/2139244)

 

- 2017년 4월 11일(화) 양천구 모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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