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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내 생각

슬프고도 힘들었던 거짓말(상)

by 쟝파스타 2017. 4. 11.

(약간의 각색이 가미된 글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모두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백색 거짓말이든, 흑색 거짓말이든. 어쩌면 거짓말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어지간한 거짓말쟁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내가 성인이 되서 했던, 슬프고도 힘들었던 거짓말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내가 성인이 된 후 한 거짓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직장에 입사해서 프로야구 'LG트윈스' 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LG트윈스'의 골수팬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실 나는 광주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팬이다. 2009년, KIA 타이거즈가 SK 와이번스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나지완 선수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하였을 때, 그 장면을 TV 중계가 아닌 잠실 야구장에서 직접 본 것을 자랑으로 삼을 정도다.

 

7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나지완 선수의 이 홈런 한방으로 KIA 타이거즈는 V10을 이뤄냈다.

(출처 : http://news.donga.com/View?gid=23661806&date=20091024)

 

  나의 첫 직장은 'LG화학'이었다. 먼저 입사한, 그리고 나와 같이 KIA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학교 선배는, 회사에서 결코 KIA 타이거즈의 팬이라고 하지 말고, 이왕이면 LG트윈스 팬이라고 말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형... 그건 제 신념에 어긋나는 일인데요..."

  "야, 신념이 밥 먹여주냐잉? 시키는대로 해 임마.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해주는 말잉게"

 

  회사 교육이 끝나고 현업으로 배치가 된 나를 환영하기 위해 팀의 첫 회식이 열렸을 때, 아니나 다를까... 팀장님께서는 내게 야구를 좋아하냐고 물으셨다. 첫 회식이라 긴장하고 있던 탓일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예' 라고 답해버렸고, 회식 자리의 화두는 이로써 'LG트윈스의 가을야구 가능성'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야구를 잘 모른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릴 것을... 순간 후회했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고 역시 내가 예상했던 팀장님의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 그러면 쟝파스타씨는 어디 응원해? 역시 서울이 고향이니까 LG트윈스겠지? 저 부산 출신 이차장은 롯데 응원하다가 LG 입사하고 LG 트윈스로 바꿨어~! 허허허!!!"

 

  씁쓸히 웃으시는 이차장님의 얼굴과 회식의 분위기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여기서 KIA 타이거즈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쉽지 않겠다는 것을...

  이왕 거짓말을 할꺼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나는 이렇게 답해버렸다.

 

  "네, 저 LG 팬입니다! 아니, MBC 청룡때부터 좋아했는걸요!"

 

1982년부터 1990년 1월, LG에 인수되기 전까지 서울을 연고지로 했던 MBC 청룡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19029672)

 

  사실 눈치가 좀 빠른 독자들이라면 이쯤에서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MBC 청룡이 창단한 년도가 1982년이고, LG로 매각된 것이 1990년 초. 90년이면 내가 5살 꼬맹이였을 때인데 어린 아이가 MBC 청룡은 커녕 야구 규칙을 알기나 했을까.

  어쨌든, 나의 이 거짓말은 회식 특유의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아무런 '사상검증' 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몇년간 비밀번호를 찍던 LG트윈스는 내가 입사한 2013년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시즌 2위를 달성해버리고 만다.

  입사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LG그룹의 경우에는 오너들이 타 구단들보다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 이 때문인지 LG트윈스의 뜻밖의 선전에 사내에는 야구를 잘 모르는 임원들마저도 LG트윈스 선수들의 라인업과 투수 선발 로테이션 등을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사실 나 역시 KIA 타이거즈에만 관심이 있었지, LG 트윈스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첫 회식에서의 거짓말과 LG트윈스의 선전으로 나 역시 LG트윈스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선발 로테이션은 어떤지, 레전드 선수들은 누가 있으며 플레이 스타일 및 감독의 성향 등...

 

  난 이때 깨달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도, 이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즐기게 되면 정말 재미없다는 것을...

 

-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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