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영화

[관람기]사일런스(2016)

by 쟝파스타 2017. 3. 8.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69117)

 

 

(천주교 신자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또한, 철저히 주관적인 글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택시 드라이버와 디파티드, 그리고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 수 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킨 마틴 스콜세지 옹의 새 영화, '사일런스'를 보고 왔다. 일전에 아버지께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빌려 오셔서 읽으시곤 깊은 감명에 빠지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맞다. 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엔도 슈사쿠 : 1923년 3월 27일 ~ 1996년 9월 29일

(이미지 출처 : 카톨릭신문 http://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56391)

 

   보통, 소설이 원작인 영화의 경우, 해당 원작 소설을 먼저 읽지 않았다면 그 영화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 내 철칙 중 하나다. 그 이유는 두 가진데, 첫째로 영화의 시각적 이미지들이 향후 원작 소설을 읽을 때 겹쳐 떠오르는게 싫다. 책은 상상하며 읽는 것이 재미인데, 영화의 영상 이미지들이 나의 상상을 일정한 프레임 속에 가둬놓는 것을 나는 쉽게 견디지 못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이런 영화들은 보통 원작 소설들의 표현을 뛰어 넘지 못한다. 감독들이 작가들보다 역량이 떨어져서라기 보단, 그 만큼 글보다 영상이 표현에 있어 더 많은 제약이 있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책의 분량을 길어야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사이에 압축하여 스크린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원작들의 섬세함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1983년 5월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의 명장면 중 하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은 이 영화를 그렇게 싫어했다고 하지 아마?

(이미지 출처 : 허핑턴포스트 http://www.huffingtonpost.kr/2016/04/15/story_n_9707152.html)

 

   그렇다고 해서 소설 원작들의 영화를 아예 평가절하 할 의도는 전혀 없다. 실제로 거장 스탠리 규브릭 감독은 역시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거의 재해석하다시피 하여 소설과는 또 다른 명작 영화 '샤이닝'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아무튼 각설하고, 다시 스콜세지 옹의 영화 '사일런스' 관람기로 돌아오자. 일단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영화화된 소설 원작을 읽기 전엔 영화를 보지 않는다.'라는 나의 철칙을 깨어버린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오히려 관람 후, 원작 소설을 구입하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엔도 슈사쿠와 스콜세지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나는 이다지도 흥분했을까.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7세기, 선교를 떠난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의 실종 소식을 들은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르페’(아담 드라이버) 신부는 사라진 스승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으로 떠난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인 그 곳에서,
 두 신부는 어렵게 믿음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생각보다 훨씬 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두 신부는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침묵하는 신을 원망하며 온전한 믿음마저 흔들리게 되는데…"

 (줄거리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922#story)

 

 

 

   사실, 영화 자체는 초반 30 ~ 40분 정도를 지나치게 되면 급격히 템포가 느려진다. 차라리 폭력으로 선교사들을 대해줬으면 좋으련만, 일련의 기리시탄들과 선배 선교사들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관리들은 깨닫는다. 폭력으로 인한 포교의 방해는 기리시탄의 순교자들을 탄생시켜 그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였을까, 일본의 관리들은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일절 린치를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부들이 사랑하고 관심을 쏟아주어야 할 평민 기리시탄들을 대신 박해하며, 신부들의 배교를 강요한다.

 

   결국, 주인공인 로드리게스 신부는 바다에서 순교한 동료 가르페 신부와는 달리,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한다. 굳은 의지와 신념으로 똘똘 뭉쳐 눈빛마저 반짝거리던 영화 초반 로드리게스 신부의 모습은, 영화가 진행될 수록 체념하는 얼굴로 바뀐다. 배교 후 남은 여생을 성직자가 아닌, 먼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가 결국 일본식 장례로 세상을 떠난 로드리게스 신부. 끝없이 주님께 길을 물으며 고뇌했던 그는, 사후 그토록 그가 그리던 주님을 만났을까. 그의 두 손에 몰래 포개져 있던 작은 십자가가, 영화 내내 참았던 나의 눈물을 결국 터뜨리게 하고 말았다. 바람소리와 벌레소리 등이 잔잔히 흐르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나는 다른 관객들보다 비교적 늦게 영화관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천주교 신자인 내가 생각하기에 '주님' 혹은 '그리스도'는 굉장히 입이 무거우신 분이다. 당장 신약 이후의 성서 내용과 기록들을 봐도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직접 소리로 말씀하신 경우는 손에 꼽힌다. 그리고 그 말씀을 설령 들었다 해도, 천주교의 경우에는 교황청의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인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포루투갈의 한 마을에 발현하신 파티마의 성모님

(이미지 출처 : http://www.evangelicaloutreach.org/images/fatima-mary)

 

   그렇다면, 그리스도, '주님'께서는 항상 침묵 만을 하고 계신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또 꼭 그렇다고 보기도 힘든 것이, 나는 아니지만,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시는 신자분들이나 성직자들께서는 어떤 형태로든 간에 (굳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믿는 신들에게서 응답을 받긴 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많은 이 세계의 종교들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을 리가 없다.

 

   이야기가 종교철학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뭐 어쨌든... 그렇다면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신'은 과연 침묵하였는가? 내가 볼 땐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격려와 가르침을 주셨다. 그가 만난 이국땅 기리시탄들의 믿음 속에서, 그리고 그와 기독교를 적대하는 관리와 통역들로부터, 그리고 그를 항상 따라다니며 회개를 요청하는 기치지로로부터.

   따지고 보면,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인 '선교' 그리고 '순교' 자체를 주님께서 직접 지시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천주교 신자인 나로서는 '순교' 자체를 부정하긴 힘들다. 오히려 용기있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께선, 정말 그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 다른 이방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라고 직접 지시하셨을까?

 

   천주교와 기독교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 하물며 '서로 사랑하여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사랑은 커녕 서로 반목하고, 나아가 목숨까지내던지는 상황을 주님께선 정말 진심으로 바라셨을까.

   영화를 본 지 몇일이 지났지만 이 화두에 대해선 섣불리 해답을 내릴 수 없었다. 아니, 쉽게 해답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향후 어떤 경로든 다시 이 영화를 접하게 될 때, 나의 감상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땐 나도, 주님과 좀 더 친하게 대화하면서 살고 있을까. 어쩌면, 이 영화를 통해 좀 더 내가 믿는, 천주교라는 종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부족하나마 그 생각들을 이렇게 적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주님께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마무리한다면, 그건 너무 심한 종교적 비약이요 오만일까.

 

   어쨌든, 공교롭게도 영화를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후 이틀이 지난 금요일에 관람했고, 덕분에 올해 사순절을 좀 더 종교적으로 기도하면서 보낼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이 영화만 보시고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원작 소설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영화와는 다른 소소한 점들이 내포되어 있고, 끝의 결말도 미묘하게 다르다.

 

일본 나가사키 히가시시쓰마치에 위치한 엔도 슈사쿠 문학관

엔도 슈사쿠는 나가사키의 바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미저 출처 : 일본 나가사키 관광 홈페이지 http://travel.at-nagasaki.jp/ko/s/what-to-see/51/)

 

 

 

2017.3.8.(수) 작성

반응형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람기]파운더(The Founder, 2016)  (0) 2017.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