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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내 생각

"Ownership" - '밥상'의 질과 양을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

by 쟝파스타 2018. 12. 21.

장프로, 15년도 예산안 가지고 들어와. 보자.

그는 나를 항상 장프로라고 불렀다. 아니, 아니라 그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을 모두 프로라고 불렀다. 출근하기 시작해서 퇴근할 까지 내며 부하 직원들을 속된 말로 조지는 것이 특기였던 직장 상사 P 이야기다. P 항상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서 이로써 당혹해하는 부하 직원들의 모습을 즐기는 새디스트였다. 하지만 적어도 경영 관리에 대한 업무 경험과 실력 만큼은 사내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연말, 무기명으로 진행되는 360 인사 평가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해 그는 번번이 임원 진급에서 낙방 하곤 했다.

내가 속한 경영관리담당 담당이었던 그는 나를 비롯한 담당 내의 모든 직원들에게 프로의식 가질 것을 강조했다. 어차피 오너의 딸이나 손녀와 결혼하지 않는 이상, 사기업에서의 주인 되긴 불가능하고, 대신 최소한 받고 있는 월급 이상의 몫은 해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능력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야구선수처럼. 인사팀에서 때로 사내 주인의식 함양 관련된 교육을 진행할 때면 주인의식? 웃기고 있네라면서 비웃기도 했다. 그에게 회사 전쟁터였으며, 그는 항상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싸움꾼이자 용병이었다. 매우 용기있고, 싸우며, 승리하는 법을 알고 있지만, 주변에 믿을만한 동료 부관은 없는.

이런 P 독재적 횡포에 견디다 못한 경영관리팀의 B팀장님은 발령 1년만에 다른 본부로 도망가셨다. 6개월이 지난 , 고등학교 2학년 딸과 중학교 2학년 아들을 직속 상관 Y팀장님은 회사를 그만 두시고 중소기업으로 이직하셨다. Y 팀장님의 환송회날, 의지가 많이 되었던 Y팀장님을 떠나보내기가 아쉬워 울먹이던 나를 보고 만취하신 Y팀장님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후련하다. 적어도 이젠 대상포진에 이렇게 자주 걸리진 않을거야. 버틸거라 믿는다, 쟝파스타.

그리고 팀장님의 믿음과는 다르게, 2016 7월엔 역시 회사를 그만 뒀다.

대기업이라는 보잘 없는 타이틀과 4 보험의 안전한 보호막이 사라진 이후, 인생은 180 바뀌었다. 이상 카드를 새로 만들거나 외제차를 구입하라는 스팸 전화는 오지 않았고, 자리를 카드값 독촉 전화가 대신 채웠다. 나는 처절하게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퇴직금은 점점 떨어져가고 있었고, 30 초반의 나이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없었다. 스스로 벌이를 해서 먹고 살아야만 했다. 그만큼 절박했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인도네시아 행을 결정, PT Pratama Abadi Industri라는 회사에서 일할 있는 기회를 얻었다. 따지고 보면, 회사에서 나를 사원으로 채용한 것은 믿겨지지 않는 일이. 직장을 3년만에 그만 두고, 1년간의 공백기가 존재하며, 스펙 뛰어나지도 않은 그대로 Question Mark(?) 둘러싸인 올드 루키(Old Rookie) 채용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도박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회사에서 나의 업무 능력을 대해 평가하는프레젠테이션 있던 날이었다. 나름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그동안 스스로 발로 뛰면서 배운 내용을 발표하였지만, 임원분들의 반응은 시원치않았다. 특히 무엇보다 감사님으로부터 기대에 미치는 PT였다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못내 아쉬웠, 감사님 앞에선 내색하진 않았지만 부끄러웠다.

이러한 이유에서, 어젯밤엔 피곤했지만 잠을 이룰 없었다.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서. 또한 회사에서 선배들로부터 없었던 주인의식. 이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내야 했고 말이다. 러다 보니 배가 고파져서 말고 과자를 먹다가 문득 일전에 인터넷에서 비즈니스 대한 색다른 정의가 우연히 떠올랐다.

비즈니스 누군가와 밥그릇을 공유하고,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가는

 

그리고 우리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있는 총사님 입장에서 회사의 운영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따지고 보면 총사님은 이 회사 인수하셔서 30년간 유지시키기 위해 인생을 걸었다. 그리고 총사님과 한국인, 인니 현지 임직원 모두가 Nike 신발 제조라는 비즈니스이자 밥상 많은 식구들을 불러 함께 밥을 먹고, 밥상에 올라갈 반찬의 날로 풍성해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천둥벌거숭이 인도네시아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한국에서 건너온 . 그런 나에게, 일단 이라도 먹으라고. 먹고는 살아야 아니냐고 숟가락이라도 얹을 있게 기회를 것이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낱 식객 불과한 나를, 본인들의 밥상에 앉혀준 이 회사 위해, 식객 아닌 식구 인정받아 역시 우리의 밥상을 풍성하고 크게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 그것이 기회 받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식구 되길 희망하는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우리 회사의 Ownership이기도 하고 말이다.

 

후기

위 게시글은 내가 인도네시아에 거주했을 당시 근무했던 회사에서 '감사님'의 지시로 작성한 것을 블로그에 옮긴 것이다.

그 회사는 나이키로부터 오더를 받아 신발을 제조한 업체였는데,

건강 상의 이유로 나는 2019년 4월 말에 해당 회사를 관뒀다.

건강 문제도 문제였지만, 지독하고 전근대적인 '음주 문화'가 나를 심각하게 괴롭힌 회사였다.

아직도 90년대 초반인줄 아는 할재 및 아재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했고.

그래도 Question Mark였던 나를 받아주신, 그리고 끝까지 신뢰해주신 '감사'님이 때로는 생각이 난다.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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