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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타주의의 기원 - 게임 이론과 생물학 (하)

by 쟝파스타 201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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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주의의 기원 - 게임 이론과 생물학 (중)



 



  팃포탯이 승리한 까닭은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한 마디로 이기적 세계로부터 협동이 생겨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가장 설득력 있게 내놓은 사람은 미국 정치학자인 로버트 액슬로드 교수이다. 그는 컴퓨터 토너먼트를 두 차례 실시하여 이기적 개체로부터 협동을 끌어 내는 가장 우수한 전략을 찾아 냈다.




 여기서 전략은 미리 프로그램된 행동 방침을 의미한다. 토너먼트 참가자는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에서 죄수 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출했다. 다른 죄수를 상대함에 있어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상호 작용하는 순서에 따라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었다. 모든 프로그램은 반드시 다른 프로그램(곧 다른 죄수)과 상대할 때 배반 또는 협동을 양자 택일하도록 작성되었다. 토너먼트는 두 개의 프로그램이 승부를 겨루어 높은 점수를 받는 쪽이 이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우승의 영예는 두 차례 모두 심리학자인 아나톨 라포포트 교수의 팃포탯(Tit for Tat) 프로그램에게 돌아갔다.


  대갚음을 뜻하는 팃포탯은 "처음에는 협력한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그 전에 행동한 대로 따라서 한다"는 두 개의 규칙으로 구성된다. 참가한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짧고 단순한 팃포탯이 다른 복잡한 프로그램을 패배시킨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팃포탯이 승리한 까닭은, 인정 많음(먼저 배반자가 되지 않음), 관대함(상대방이 배반한 적이 있더라도 다시 협력하면 따라서 협력함으로써 협조 분위기를 복원시킴), 분개(상대방이 배반하면 따라서 배반함으로써 즉시 응징함), 명료함(단순하여 상대방이 쉽게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의 네 가지 특성을 가진 전략이기 때문이다. 팃포탯은 한 마디로 당근과 채찍(회유와 위협) 정책의 요체를 합쳐 놓은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팃포탯은 상대방과 싸워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쌍방 사이에 만족스러운 행동을 끌어냄으로써 승자가 된 것이다. 팃포탯의 상호 작용은 제로섬이 아니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논제로섬의 세계에서는 협력 관계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증대된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1984년 액슬로드는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펴낸 "협동의 진화"에서, "상호 협동은 중앙 통제 없이도 이기주의자들의 세계에서 출현할 수 있다. 그것은 호혜주의에 입각한 개체들의 집단에서 시작된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타고난 장사꾼이다


  상호 이타주의 이론이 10여 년이 지나서 액슬로드에 의해 수학적으로 설명됨에 따라 동물 세계에서 팃포탯의 상호 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를 찾는 연구가 활발해졌다. 대표적인 성과는 흡혈박쥐이다. 



흡혈박쥐

출처 : 진화론과 무신론


  밤에 말이나 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 박쥐는 생존이 불안정하다. 먹이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 박쥐는 열흘에 하루, 어린 박쥐는 사흘에 한 번 정도 밤에 굶게 마련이다. 굶는 박쥐가 있으면 정량 이상의 피를 들이삼킨 박쥐는 게워 내서 나누어 준다. 같은 동굴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기 때문에 상대를 서로 잘 안다. 따라서 과거에 피를 나누어준 박쥐로부터 나중에 되돌려 받는다. 그러나 피를 독식한 박쥐는 훗날 다른 박쥐로부터 피를 얻어 먹기 어렵게 된다. 말하자면 흡혈박쥐는 팃포탯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1992년 팃포탯의 약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팃포탯의 사례가 청소고기와 흡혈박쥐밖에 발견되지 않았을 뿐더러, 두 사람이 하는 게임인 죄수의 딜레마에서 협동이 진화되었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이 어울리는 현실 세계의 협동을 호혜적인 전략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3년 미국 철학자인 필립 키처는 '선택적 죄수의 딜레마(optional PD)'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네 종류의 전략가가 참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데, 최선의 전략은 사회적 배척(ostracism)으로 나타났다. 일단 배반자를 인지하면, 팃포탯에서처럼, 그와 어울리기를 거부하고 배반한 적이 없는 사람들과 협력하면 된다는 뜻이다. 요컨대 호혜주의에 입각한 사회적 배척이 여러 사람이 사는 현실 세계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효력이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거래, 계약, 교환, 분업, 양보, 의무, 빚, 은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수히 듣는 이 단어들 속에는 호혜주의의 정신이 깃들여 있다. 1996년 영국의 과학 저술가인 매트 리들리가 펴낸 '미덕의 기원'에 적절히 표현된 바와 같이, 인간은 "유일 무이하게 상호 이타주의에 익숙한 존재"이다. 그렇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탁월한 장사꾼이다. 더불어 살 줄 아는 지혜를 가진 동물이다. 인생은 결코 제로섬 게임이 아닌 것을.


 (끝)

이인식 (1999).《제2의 창세기》김영사.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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