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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내 생각

의도하지 않은 설계(하)

by 쟝파스타 2017. 4. 20.

- 의도하지 않은 설계(상) 에서 계속...

 

 

 

 

대한민국의 치안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포돌이, 포순이. 부럽다. 너넨 그래도 공무원이잖어...

(출처 : 어린이 경찰청 http://kid.police.go.kr)

 

 

  선행의 결과는 달고 시원했다. 우리는 김순경님이 사온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파출소에서 두 경찰관 아저씨들이 해주시는 이런 저런 덕담을 들으며 인사를 드리고 다시 동네로 향했다. 모두 뿌듯한 마음으로 서로의 어깨를 두들기며, 내가 뛰어갈테니 너가 자전거 타고 가라며 양보까지 하면서...

 

  다시 동네로 돌아왔는데 동네 형 K가 어두운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국민학교 고학년이었던 K형은 종종 우리들과 함께 놀아줘 나와 내 친구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던 형이었다.

 

  "K형, 뭐해?"

  "없어졌어..."

  "뭐가...?"

  "엄마가 준비물 사라고 준 오천원..."

 

  전후관계를 따져보니 내가 습득했던 오천원의 주인은 K형임이 틀림없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K형에게 오천원의 행방을 알려주었고, K형은 바로 우리들의 자전거보다 훨씬 큰 어른 자전거를 집에서 가져오며 말했다.

 

  "쟝파스타, 타!"

 

  행동파였던 우리는 다시 파출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자전거가 네 대 였으므로 다행히 뛰어가는 사람은 없었고, K형의 급한 마음 때문인지 훨씬 더 빨리 파출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우리들은 아까처럼 호흡을 정리하고 최대한 공손한 표정과 태도로 들어가려 했으나, K형은 급했다. 자전거에서 내리자마자 파출소에 뛰어들어갔다.

 

  "헉... 헉... 아저씨... 오천원... 제 돈... 헉... 헉..."

 

  정신없던 K형 대신 내가 좀 전에 만난 두 경찰관님께 사정을 설명드렸다. 그 때 두분의 표정이란...

 

어렸을 때였지만, 김순경님의 얼굴에서 잠깐 살기와 빡침을 느낀 것 같긴 하다. 분명히...

(출처 :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149482)

 

  "와... 이거 꼬마 친구들이 제대로 '설계'했네... 허허허!!!"

  "선배. 이거 의도적인거면 범죄 요건 성립되는거 아니에요...?"

 

  김순경 아저씨는 살짝 표정이 굳어지며 우리를 쳐다봤다.

 

  "애들이 뭘 알겠어. 이봐, 김순경. 경찰일 하다보면 별 일 다 있는거여~~"

 

  결국 K형은 오천원을 찾았고, 우리는 두 분께 인사를 드리며 다시 동네로 돌아갔다. 김순경님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지만, 그 선배라는 경찰관 아저씨는 차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파출소 밖에까지 나와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셨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돌아오는 길에 K형의 등 뒤에서 내가 형에게 물었다.

 

  "형! 근데 설계가 뭐야?"

  "야, 넌 그것도 모르냐? 설계는 집이나 빌딩 짓기 전에 그림 그리는거 아냐!"

  "...그러면 우리가 집 지었어...?"

  "........."

  "아 형~! 우리가 뭘 지었길래 설계를 했다는거야~~?"

  "나도 몰라 그건!!"

 

  '설계'가 사기를 치기 전에 그럴싸하게 상황 등을 맞춰놓는 사전작업을 뜻하는 은어임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였다.

 

(출처 :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d278d4e30b104fc4b196853fdcd3fcc0)

 

  아무튼... 1993년 이후 20여년이 흘렀다. 용인상회 근처를 뛰어놀던 우리는 성인이 되었고, 안타깝게도 지금은 서로 연락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각종 사기범죄와 그로 인한 불신은 1993년 그 때보다 훨씬 더 늘어난 듯 하다.

 

  오천원 지폐를 볼 때마다 종종 생각나는 이 사건. 파출소로 찾아간 우리들에게 사비를 털어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고, K형과 우리가 재방문하여 오천원을 찾아갔을 때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들의 안전을 걱정했던 '선배' 경찰관 아저씨는 지금쯤 은퇴하셔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실지 궁금하다.

 

  아무쪼록,

  감사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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