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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내 생각

의도하지 않은 설계(상)

by 쟝파스타 2017. 4. 19.

 

  우연히 타인의 지갑이나 스마트폰, 시계 등을 습득할 경우 이 포스팅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가? 아마도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경찰서나 동사무소 혹은 지하철 유류품 센터 등에 맡기실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물건을 잃어버려 전전긍긍하고 있을 주인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습득물을 내가 그냥 갖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습득물을 경찰서 등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배웠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나와 내 친구들은 이로 인해 선량한 경찰관 두 분의 주머니를 털어버린 적이 있다.

 

1999년 개봉한 마틴 로런스 주연의 '경찰서를 털아라' 포스터.

마틴 로런스의 연기가 압권인 영화다. 내용은 뻔하지만...

 

  1993년 여름,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서울시 강서구 동방주유소 뒷편 용인상회 근처에 살았었다. 경사가 큰 비탈길이 있어, 겨울에 눈이 오면 간이 눈썰매장이 되곤 했던 그 동네. 당시에는 요즘처럼 TV만화나 온라인게임, 스마트폰이 없었다. 국민학교 저학년들은 월요일 ~ 토요일 4교시만 마치면 하교를 했고, 서로 각자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온종일 뛰어 노는게 일상인 그런 시기였다. 제대로 된 놀이터 하나도 없었던 그 골목에서 나와 내 또래 친구들은 뭐가 그리 신나고 재밌었는지...

 

  그러던 어느 날... 우리들이 어김없이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놀고 있을 때였다. 술래를 피해 집 근처 전봇대 사이로 몸을 숨기려던 찰나, 내 눈에 갈색 종이쪼가리 하나가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종이는 '오천원짜리 지폐'였다. 잠시 멍해졌던 나는 지폐를 주워 한참을 쳐다봤다. 이미 술래잡기 놀이 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 결국 술래였던 한 친구가 나를 잡으려 뛰어오다가 그 역시 내 손에 쥐어진 '오천원짜리 지폐'를 보고 멈춰버렸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느낀 다른 친구들도 술래잡기를 멈추고 각자 숨어있던 장소에서 벗어나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한 친구는 장독대 뒤에서, 한 친구는 골목길 사이 창고에서, 또 한 친구는 자기 집에서...

 

문제의 오천원 구권. 2002년에 신권으로 변환되고,

2006년 이후 현 오천원으로 또 교체되었다.

(출처 : 한국은행 http://www.bok.or.kr/broadcast.action?menuNaviId=2035)

 

  '오천원'이다. 시내버스 요금이 250원, 택시 기본요금이 900원, 짜장면 한 그릇이 2,000원 하던 시절이다. (일상소비생활 I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http://data.si.re.kr/node/376 참조)

  요즘 짜장면 값이 5,500원 ~ 7,000원 정도 하니, 당시의 오천원으로 짜장면 2.5그릇을 사먹을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약 13,000원 ~ 16,000원의 현재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엄마, 백원만. 엄마, 백원만'을 외쳤던 우리들에게 그 오천원은 상당한 거금이었다. 나를 제외한 여섯명의 친구들은 일제히 조심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엔 '그 오천원, 어떻게 할거야?'라는 무언의 질문과 부러움, 질투 등이 섞여있었다.

 

  대중의 힘이란 무섭다. 만약 내가 그 오천원을 혼자 있었을 때 주웠더라면 조금이나마 갈등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친구들이 보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때의 나는 어리고 순수했다.

  결국 나는 '도덕 교과서'라는 훌륭한 메뉴얼에 따라 행동하기로 했다.

 

  "경찰서에 이 오천원, 가져다주자!"

 

  모두의 얼굴이 환해졌다. 당시 우리는 철저한 행동파였다. 오천원을 되돌려주자는 결정이 떨어지자, 자전거 3대가 동원되어 2명씩 여섯명이 나눠탔고 한 명은 뛰어서 인근 파출소로 향했다. 물론 순번을 정해 뛰던 친구와 교대로 갈아타면서...

우리는 비록 7인의 사무라이는 아니었으나,

오천원의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사명감은 이들 못지 않았다.

(출처 : http://www.koreatimes.com/article/661627)

 

  10분쯤 이동하여 파출소에 도착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우리들은 호흡을 정리하고 최대한 공손한 표정과 태도로 파출소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경찰관 아저씨 두 분이 선풍기와 부채 바람을 맞으며 서로 환담을 나누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가자 두 분은 황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우리를 맞이했다.

 

  "어이구~~ 우리 꼬마 친구들~ 파출소에는 어떤 일 때문에 오셨나요?"

 

  우리는 내가 습득한 오천원을 내밀며 '길에서 주워서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왔다'고 말씀드렸다. 경찰 아저씨 두 분은 온화하게 웃으셨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착한 친구들이네. 너희가 우리 어른들보다 낫다. 김순경! 여기 돈 줄테니까 가서 아이스크림 좀 사와. 상을 줘야지!"

  "네. 선배님은 뭐 드실거에요?"

  "아무거나. 아니다. 그, 난 수박바!"

여름이면 생각나는 수박바. 나는 저기 아래 녹색부분이 제일 맛나더라...

(출처 : http://www.seehint.com/product/view.asp?no=6735)

 

 

- 의도하지 않은 설계(하)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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