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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찬 이성 더운 가슴" -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중)

by 쟝파스타 2013. 6. 24.

바로가기 : "찬 이성 더운 가슴" -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상)



 



  한계수확체감의 법칙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은 개념적으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동일하다. 다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소비자를 중심으로 소비와 효용의 관계를 다룬 것이라면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은 자본가를 중심으로 생산과 효용의 관계를 다룬 것이 다르다.


  자본가의 목표는 오로지 이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도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 창출 메커니즘에서 자본가가 전혀 자유롭지 않다는 데 근거했다. 즉 노동자가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부속품인 것처럼 자본가도 오로지 부속품으로서 이윤 창출에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윤을 목표로 하는 자본가는 생산에 투여하는 생산요소도 이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마셜은 여기서 <단기>와 <장기>로 시간을 구분한다. <단기>는 자본가가 생산시설을 변경시킬 만큼 충분한 시간이 없는 것을 말한다. <장기>는 생산시설을 변경시킬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기간이다.

  

  생산시설을 확충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단기>에 있어 자본가는 노동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노동력을 한 단위 더 구입해서 그것에 드는 비용보다 생산이 더 늘어나는 한 자본가는 계속 노동력을 구입할 것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를 잡는 어선의 소유자를 자본가라고 하자. 그는 단기간에 어선의 수를 늘릴 수 없으므로 어부를 계속 더 고용할 것이다. 그러나 생산설비의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어획량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차츰 노동력을 한 단위 더 구입하는 비용과 그에 따라 늘어나는 어획량이 비슷해진다. 즉 한계수확이 체감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며, 그래서 무작정 어부의 숫자만을 늘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본가가 최대의 이윤을 확보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부 한 사람을 더 쓸 때 드는 비용과 그로 인한 어획량의 증가로 얻는 소득이 같아지는 때까지 어부를 고용하는 것이다. 이때 한계비용은 어부 한 사람의 일당이고 한계수입은 늘어난 하루 어획량에 고기 값을 곱한 것이다.


  <장기>의 경우는 어떤가? 이번에는 노동력이 아니라 추가되는 자본비용이 생산요소로 작용한다. 그는 추가되는 자본비용(생산시설의 확충에 소비되는)과 그로 인한 추가수입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마지막 한 단위의 자본비용과 그로 인한 추가수입이 같아질 때까지 자본을 투자한다. 이 경우에도 한계비용과 한계수입이 같아질 때 자본가의 이윤은 최대로 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자본가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소비자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자본가의 세계에서는 그가 확보한 수익을 일부는 노동자에게 일부는 생산설비의 판매자나 토지의 제공자에게, 그리고 일부는 자신의 이윤으로 분배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즉 수익분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와 같은 경제 기사도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이라는 말은 경제학도의 지표와도 같은 것으로 마셜이 1885년 43세의 나이로 케임브리지의 교수로 돌아오던 해, 취임 강연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냉철한 이성으로 경제의 논리를 펴나갔다. 그리고 따뜻한 가슴으로 경제 기사도를 주장했다.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단기>, 혹은 <장기>의 어느 기간이든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 일러주는 대로 공정하게 행동할 뿐이다. 그리고 결국 최대의 이윤을 획득하는 점에서 더 이상의 투자를 멈춘다.


  마셜은 자본가가 <단기>든 <장기>든 한계비용과 한계수입이 일치하는 점에 도달할 때 이를 균형상태라고 불렀다. 자본가는 이 균형점에 도달해 사회의 생산요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자본가의 역할에 의해 노동자는 실업을 면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정당한 임금을 받는다. 또 자본가의 노력에 의해 수요에 필요한 상품이 충분히 생산되고 정당한 값으로 소비자에게 넘겨진다. 생산시설에 투여되는 자본도 그것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가는 기업의 수익을 임금이나, 생산설비에 투여하는 자본, 그리고 자신의 이윤으로 공정하고도 가장 극대화된 효율성으로 분배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마셜의 냉철한 이성이 한 일이다. 그의 냉철한 이성은 자본가나 노동자는 각자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생산활동에 기여한 역할만큼 이익을 얻었으며 자본가가 더 많은 돈을 축적하고 노동자가 하루 살기에도 빠듯한 임금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돈키호테와 산쵸

출처 : wikimedia commons


  여기에 아름다운 둘시네아를 구하기 위해 등장하는 돈키호테가 나타난다. 마셜의 따뜻한 가슴은 중세 유럽의 정의로운 무사였던 기사를 생각한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던 기사의 정신, 즉 기사도를 모든 자본가가 가져주기를 그는 바랐다.

  그는 가난이 지상에서 가장 나쁜 악덕이라고 했으며 그를 위해 부자들이 사회적 공공복리에 헌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그는 정상적인 경제 논리에서는 도저히 가난한 노동자들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부자들의 동정 - 그야말로 동정에 불과하다 - 에 의해서 세상을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경제 기사도는 돈키호테와 동일한 운명을 걷는다. 풍차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다 나동그라지는 돈키호테처럼 마셜의 경제적 기사도도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지만 누구에게서도 호응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소득분배에 관한 한 마셜의 경제적 기사도는 그가 따뜻한 가슴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추억 이외에는 세상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하)에서 계속...

김경훈 (1995).《10일만에 배우는 경제학 200년》새로운사람들.  15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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