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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을 통한 '새로운 혁명'의 시작
책 & 독후감

더 로드(The Road) : 가지 않은 길, 그러나 '행복'을 위한 길

by 쟝파스타 2018. 3. 6.

   어렸을 때의 나는 좋게 말하면 상상력이 풍부하고, 나쁘게 말하면 엉뚱한 아이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소심한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아버지가 컴퓨터와 인터넷을 우리 집에 설치해주신 1996년 이후 나는 UFO나 미스터리, 오컬트적인 현상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면서 ‘내일 당장 UFO가 서울 상공에 등장해서 외계인들이 우리들을 정복하면 어떻게 하지?(District 9_2009)’,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어떨까?(아이로봇_2004) 아니면 인간의 신체를 기계로 바꾸는 세상이 온다면?(공각기동대_1995)’, ‘오늘 자고 있는 동안 핵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와 같이 다소 디스토피아(Dystopia)적인 상상을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런데 세상엔 이런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이번 회차 독후감을 위해 읽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 역시 내가 걱정했던 세 번째 상상과 동일한 소재로 작성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더 로드’는 모종의 이유(대다수의 독자들은 ‘핵전쟁’이 유력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로 황폐해진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먼지로 인해 태양이 가려져 추워진 지구에서, 주인공인 두 ‘부자(父子)’는 생존을 위해 한없이 길(Road)을 걷는다. 약탈자들, 인간사냥꾼, 기타 살아남은 다른 인류들에게 적대적인 생존자들을 피해서. 


   길을 걷는 동안 두 부자는 수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눈다. 본인들이 왜 걸어야 하는지. 사람들이 서로 돕지 않고 왜 죽고 죽이며 심지어 잡아먹기까지 하는지.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는지. 이 여행에 과연 끝은 있는지에 대해서… 안타깝게도 주인공인 아버지의 아들은 모종의 이유로 황폐해진 지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핵전쟁 이전의 찬란했던 인류의 문화적 유산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일까. 우연히 아버지가 발견한 코카콜라를 마셔보며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이 상당히 안쓰러웠다. 


   ‘강’ 혹은 ‘바다’로 이동하면 좀 더 나은 영토로 갈 수 있다는 풍문을 들은 것이 전부인 두 ‘부자(父子)’는 소설 내내 그냥 걷는다. 본인들을 뒤따라오는 여행자 무리들이 일종의 추격자라고 착각한 아버지는 이 오해로 인해 여행자 무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아버지를 죽인 여행자 무리는 오해에 대한 죄책감에 주인공의 아들을 무리(가족)에 편입시키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던 소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에선 살짝 눈물이 나기도 했다.



... 울고 있었다. 그칠 수가 없었다. 소년은 오랫동안 울었다.


- 아빠하고 매일 이야기를 할게요.


소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소년은 일어서서 몸을 돌려 다시 길(Road)로 나섰다...



   나 역시 이 ‘부자(父子)’처럼 인생이란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비록 그들보다는 더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과연 이 길로 가는 것이 맞는지, 그리고 이 길의 끝에 행복이 있을지에 대해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연수를 시작한지 어언 6개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생활한지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전보다 더 단단해졌고, 절제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무엇보다 내가 지닌 학벌과 대기업 근무 경험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겼다. 그리고 나 자신을 계속 단련시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때론, 특히 밤에 잠을 자려 누울 때면 한없이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사뭇 무서워지기도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난 주 자카르타 워크샵 이후 반둥에 돌아온 뒤, 불안감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서 팀장님께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팀장님께선 이런 나의 현상에 대해 적절한 대응 방안을 이야기 해주셨다.

   어찌 보면, 나는 그 동안 연수 과정을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팀장님을 포함하여 37명이라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기보단 나는 문제가 없는 듯, 잘 버티고 있는 듯, 그리고 내 자신에게도 이래야만 한다는 자기암시를 계속 되뇌이고 있었던 듯 하다.


   그렇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 아니면 틀린지 나는 아직 모른다. 왜냐. 


   내가 아직 안 가봤으니까. 


   그리고 인생에 과연 정답이 있나 싶다. 남들이 뭐라 생각하건,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걷는 동안 ‘행복’하다면 그 여정 자체가 ‘행복’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수료일까지 앞으로 90일도 남지 않았다. 연수 이후엔 지금 함께 부대끼며 생활하고 있는 이 36명의 동기들을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남은 기간 동안, 나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열고,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비록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의 방향은 다를 수 있을지라도 ‘행복’이라는 목적지는 동일하다고 생각하기에.



2018년 3월 3일 오후,
인도네시아 반둥 UPI 
기숙사 깐띤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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